
제주도까지 가서 국수 먹고온게 무슨 자랑일까만은...
자랑 한번 해보려고... :-)
마눌님과 함께한 네번째 제주 여행.
이전 세차례의 여행을 통해 제주의 명승고적은 물론, 나름 잘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두루 둘러보았기에 이번 여행의 컨셉은 식음(食飮)과 휴식, 그리고 독서여행으로 정하고 제주도로 향했다. 이런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 리조트에서 뒹굴거리며, 성석제의 '소풍'이란 책을 읽다가 아래와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국숫집을 나와 L선생에게 방금 먹은 국수 맛에 대해 품평을 청하자 그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렇듯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나는 제주도에서 춘자싸롱 국시말고는 국시로 안 보네."
'춘자싸롱'은 룸살롱이나 17, 8세기 프랑스 문학살롱 같은 게 아니라 식당 이름이다. 아니 식당 이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식당에는 간판이 없으니까. 메뉴는 오직 멸치국수 하나뿐이다.
(중략)
시장의 그릇가게에서 흔히 파는 양은냄비는 특별히 새로울 건 없지만 자연스럽게 닳았다. 따라나오는 깍두기는 조금 시고 국수에는 파와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준다. 공간 곳곳에 배어 있는 냄새. 조용조용한 주인의 말씨가 모두 그 국수 맛을 구성한다.
하지만 맛의 핵심은 역시 국물에 있다. 서울의 잔치국수에 비해 국물이 굉장히 진하다. 멸치국수 국물은 남쪽 바닷가, 특히 부산, 경남 쪽이 진한 편인데 L선생 역시 경남 출신이다.
(중략)
춘자씨는 국물 맛의 비밀에 대해, 만의 하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남정네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수십인분의 국수를 더 먹어주고 현생에서는 국숫집을 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난 뒤 비로소 춘자씨는 국물에 들어가는 재료를 딱 한가지 더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제주도에서만 나는 어떤 물고기 새끼라고 한다. 그러니 제주도 밖에서는 그 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아는 사람만 그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게 비범성이 아닐까.
오전 아홉시쯤 표선면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춘자씨 댁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전날 밤부터 그렇게 먹으려고 별렀던 국수였지만 이번 길에는 먹지 못했다.
봄은 슬쩍 맛보았다. 표선면 세화리 앞 연청색 바다, 초병의 이를 악물게 하는 바람으로. 무슨 물고기인지 몰라도 그 물고기 새끼에 봄이 들면 춘자국수도 더 맛있어지겠다.- 성석제의 '소풍'에서 '국수 살롱 싸롱 국시'-
스스로 농담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임을 자랑하는 작가이기에 다분히 픽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했지만,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두둥~ 실제로 존재하는 식당이더라. 그것도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이다. 면(麵)요리라면 사죽을 못쓰는 우리 부부는 예정에도 없는 국수를 먹으러 표선면으로 고고싱~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간판도 없고 골목 안에 살짝 숨어있어, 알고 가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 서둘러 국수 두 그릇을 시켜 맛을 보니 정말 국물이 기가 막히다. 서울에서 먹던 보통의 잔치국수와는 달리 국물의 깊은 맛이 배어있더라. 이런게 30년 전통의 노하우일까?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해치운 뒤, 곱배기를 시키지 않은것을 아쉬워할 정도.
사실 나는 맛에 대해 꽤나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지인들은 나의 맛에 대한 판단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고난 미식가인 마눌님의 평가 역시 굿~ 평소같으면 좀 남길 법도 한데, 한 그릇을 다 먹어버리다니, 쩝...
의도하지 않은 우연으로 찾은 춘자싸롱의 춘자국수, 제주 여행을 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여행에서 이런 즐거움이 계속되길 기원하며...


덧1. 춘자국수 사진이 없어 또치네집에서 살짝 가져옴. 식당의 자세한 위치 정보는 또치네집을 참고하시길.
덧2.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마눌님이 극찬했던 민트레스토랑의 '안심스테이크'보다 훨씬 좋았다는...
덧3. 내친 김에 다른 식당에서 고기국수를 먹어보았으나, 춘자네 멸치국수보다는 별로였고.









덧글
dohee 2008/10/22 17:29 # 삭제 답글
ㅋㅋ 보기엔 평범한 국수 같은데..어쩌다 제주도 가서 또 저 책을 읽게되고... 국수집까지..
대단한데요.
담번에 갈땐 저두 한번 들러봐야겠어요~
까모 2008/10/24 06:23 #
dohee/강추라니까~
june 2008/10/23 11:11 # 답글
아! 이거다!제가 찾아헤매던 바로 그 음식!
먹으러 가야겠어요!!!!!!!!!!!!!!!!!!!!!!!!!!!!!111111
까모 2008/10/24 06:24 #
june/맥드리미 정리하면 열그릇 사줄께.
june 2008/10/27 14:47 #
ㅐㅐ뎌램ㄷㄱㄹ미ㅏ러ㅣ아너라ㅣㅇ모랑모라ㅣㅇ뢰;ㅗㅍㄹ미어린으림으리마너ㅠㅠ
inuit 2008/10/23 23:37 # 삭제 답글
까모님, 회사가 좀 시끄러워졌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생각나서 달려와 안부 전합니다.
까모 2008/10/24 06:27 #
inuit/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내에 결론이 날 듯 하네요. ;;
2008/10/29 12:53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까모 2008/10/30 15:24 #
넷물고기/ㅎㅎ 다음에 뵈면 되지요. 다음 기회에는 꼬옥 뵈었으면 좋겠군요. :-)